3편 개봉 후 6년이 흘렀다.
〈고질라〉 시리즈는 괴수영화일까, 재난영화일까. 전자는 파괴와 결투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. 후자는 공공의 재난 상황에 맞서 구성원들이 지혜와 용기를 짜내어 공동체를 위기로부터 구제해내는 과정을 그린다. 그런 점에서 볼 때 54년의 초대 〈고질라〉는 재난영화였다. 이후 〈고지라 대 모스라〉 〈고지라 대 킹기도라〉 〈고지라 대 스페이스고지라〉와 같은 쇼와, 헤이세이 시리즈들은 괴수영화였다. 안노 히데아키의 〈신 고질라〉는 괴수물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되 어디까지나 재난영화의 성격을 더 많이 지닌 영화다.
재패니메이션의 "모에",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"서비스 연출"은 길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. 판치라, 바스트 모핑으로 대표되는 이 연출에 대해서는, 안노 히데아키가 《에반게리온 파》에 새로운 캐릭터 마리를 등장시키면서 콘티에 썼다던 "야하게, 피규어 많이 팔리게"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. 여성의 존재를 상품화해서 내놓고, 그것으로 하나의 코드를 만들어 나간다. 거기에 덧붙인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연출은 이 장르의 일정한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.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《너의 이름은》 역시 이 공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. 그러나 그는 이 영화에서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"모에"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. 서로 다른 젠더의 두 사람을 연대하게 하는 방식이다.